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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증거에 의해 입증된 진리를 믿는 것

몇 주 전, 저는 앨라배마주 잭슨빌에서 세 명의 다른 과학자들(브래년 메이 박사, 마이크 하우츠 박사, 조 드위스 박사) 및 히브리어 학자인 저스틴 로저스 박사와 함께 ‘에폴로제틱스 프레스(Apologetics Press) 과학자 세미나’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미나 동안 우리는 모든 강연자가 무대에 올라 청중의 질문에 답하는 실시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역 대학에서 온 여러 무신론자가 참석해 있었는데, 그들 중 다수는 세션이 끝난 후에도 남아 질문을 던졌습니다.

질의응답 시간 동안 무신론자 중 한 명이 제가 자연주의자들과 과학에 대해 토론할 때마다 단골로 받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증거가 없는 믿음인 ‘신앙(faith)’이 어떻게 진리에 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까?” 이 무신론자들은 다른 유신론자들로부터 하나님을 믿는 것은 증거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들어왔던 것입니다. 증거와 상관없이 무조건 믿는 맹목적인 신뢰, 즉 ‘맹신주의(fideism)’ 말입니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맹신주의’를 “종교적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 합리적 이성보다 맹목적 신념에 의존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신앙이란 “증거가 없는 무언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교계의 많은 이들에게 성경적 믿음은 바로 그런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한 진리를 나타내는 빈 용기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사람은 이 용기에 증거를 ‘부어서’ 가득 채우고, 그 문제에 대한 완전한 진리에 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계의 많은 이들에 따르면, 종교적 믿음에 있어서는 이 용기를 완전히 채울 수 없습니다. 용기 상단에 남은 공간, 즉 증거가 채우지 못한 나머지 빈 공간은 맹목적인 ‘믿음’으로 채워져야만 합니다. 그들에 따르면, 예를 들어 하나님을 믿는 것은 궁극적으로 증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믿음에 근거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 성경은 믿음을 그렇게 정의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믿음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인 ‘피스티스(pistis)’는 종교적 신앙을 논할 때만 적용되는 특수하고 신비한 종교 용어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영어의 ‘신뢰(belief)’나 ‘신용(trust)’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거나’, ‘신뢰하거나’, ‘확신할’ 때, 그 믿음은 증거에 기초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신뢰할 만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했다면, 우리는 그를 믿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을 모르고 그의 정직함을 입증할 증거가 전혀 없다면, 그를 믿는 것은 증거 없는 맹목적인 믿음이 될 것이며, 이는 비합리적이고 지혜롭지 못한 일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제공된 증거에 기초하여 진리에 대한 지식에 도달해야 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 따르면, 하나님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아주 많은 증거가 제공되었기에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핑계하지 못할” 일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단지 ‘믿음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있으며,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요한복음 8:32). 우리는 무언가를 믿기 전에 모든 것을 시험하거나 ‘확증’해야 하며, 오직 선하고 옳은 것만을 붙잡아야 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5:21).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너그러운(개역한글: 신사적인)” 베레아 사람들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주장을 맹목적으로 믿기 전에 그것을 입증하는 증거를 찾기를 원하십니다(11절). 세상에 많은 거짓 선지자가 나왔으므로, 그분은 우리에게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일서 4:1). 이성과 대립하는 맹목적인 믿음(즉, 맹신주의)과 달리, 바울은 이성을 사용하여 진리를 세우는 것을 믿었습니다(사도행전 26:25). 사실 예수님께서는 만약 자신이 증거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믿지 말라고 청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10:37).

맹목적인 ‘믿음’이라는 개념은 비성경적입니다. 성경이 묘사하는 믿음은 오히려 우리의 진리 용기에 증거가 ‘부어지는’ 것과 더 비슷합니다. 증거가 용기 꼭대기까지 차올라 넘쳐흐르기 시작하는 모습 말입니다. 여기서 ‘믿음’이 개입하는 지점은, 우리가 증거에 의해 검증된 진리를 바라보고 그것을 믿을지 말지 ‘선택’할 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믿지 않으며 믿으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마태복음 7:13-14). 그것은 그들 자신의 선택이지만, 하나님께서 진리에 도달할 만큼 충분한 증거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각자의 개인적인 동기 때문에 이미 충분히 주어져 있는 증거를 거부한 것입니다.

세미나에서 청년들이 했던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그렇듯이, 제가 “믿음은 증거 없는 믿음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실 증거에 의해 요구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들은 충격을 받습니다. 이번 경우에도 무신론자들은 다섯 배나 더 큰 충격을 받은 셈입니다. 왜냐하면 패널로 참석한 모든 강연자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Fideism” (2015), Merriam-Webster On-line Dictionaryhttp://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fideism, emp. added.

“Faith” (2017), Merriam-Webster On-line Dictionaryhttp://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faith.

William Arndt, F.W. Gingrich, and Frederick W. Danker (1979),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Chicago, IL: University of Chicago Press), second edition revised, pp. 662-664.

“Fide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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